새벽예배

제목막 11:8-10 몽매무지(蒙昧無知)2026-02-11 10:47
작성자 Level 10

막 11:8-10 몽매무지(蒙昧無知)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몽매무지(蒙昧無知)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무지몽매’라고 알고 있지만 표준어는 ‘몽매무지’입니다.

단어의 뜻은 ‘어둡고 어리석어 아무것도 모름’이라는 뜻으로 ‘사리 분별을 못하는 무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깨달음이 없고 사리분별을 못하게 되면 올바른 행동을 하기는 어려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어릴적에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옳지 못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이들의 몽매무지한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살펴본 예수님께서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8-9절을 보시면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다는 것을 8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옷을 바닥에 깔기도 하고, 종려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는 행동을 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 행동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그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여기는 행위였습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하 9장 13절을 보면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라고 예후가 왕으로 선포될 때, 사람들이 자기 옷을 계단 위에 깔아 왕권을 인정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문화적 이해를 가지고 예수님께 행동한 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설교하면서 적지 않게 말씀드린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 행하신 많은 사역들을 통해 사람들은 예수님을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왕’으로서 인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몽매무지’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다윗의 왕권과 지배력을 회복하시기 위한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스가라 9장 9절에 기록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는 말씀에 기록된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는 정치적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 예수님의 생명을 대속을 이루시고 그 값으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한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10절에서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라고 소리치고 찬송하는 이유가 ‘다윗의 나라여’라는 정치적 메시아로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기 위해 호산나를 외치고 자신들의 옷을 깔고, 나뭇잎을 깔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시고 구원의 길을 우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폭도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우리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찾고 바라보는 삶의 모습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아뢰고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주신 은혜이고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본질이 되고, 전부가 될 때 그 믿음은 언제든지 주님을 온전히 인정하기보다 불평과 원망의 존재로 바뀔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내 믿음이 호산나를 외치고 겉옷을 까는 하나님 앞에 몽매무지의 모습은 아닌지 점검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이유이고 목적인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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