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제목막 10;28-31 제자의 복2026-01-22 11:46
작성자 Level 10

막 10;28-31 제자의 복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마가복음 8장 34절에서 말씀하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육신적으로는 쉽지 않은 삶입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육신적인 어려움 앞에 제자로 살아가려고 하기보다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인생을 선택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목사로 신뢰하는 말씀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면 육신적으로는 반드시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영적 싸움을 걸어옵니다.

    

육적으로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헌금을 하면 나에게는 물질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적 헌신을 하면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합니다.

희생하고, 배려하면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당장의 시간에는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육신적으로 어렵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2절을 보시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사도 요한의 간구하는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바로 서고, 강한 삶이라면 범사와 강건이라는 인간이 육신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두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의 삶이 있는 이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통해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28절에서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제자들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것은 근심하고 돌아간 사람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 나눠주고 제자가 되라고 하신 말씀에 물질에 가치관을 둔 것으로 인해 제자가 되기를 포기했던 사람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두렵게 이야기 하신 것 때문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이 말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육신의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이야기에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본문 29-30절을 보시면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육신적으로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우리 삶을 보면서 납득이 가지 않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께 이렇게 헌신하고 수고하셨는데 육신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시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기복주의 신앙이 근간을 이루던 때는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거나, 혹여나 사업이라도 망하게 되면 ‘무슨 잘 못을 해서 벌을 받는가?’라고 정죄하기 일 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런 육신적 유익을 얻을 것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믿으시고 30절에 기록된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는 것이 주어지셨습니까?

    

물론 29절의 말씀처럼 온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30절의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30절의 말씀을 육신적인 것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 칼빈은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보상은 세상의 풍요가 아니라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영적 유익을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으로 집은 교회를 의미하고, 형제·자매는 믿음 안에서 맺은 동역자를 의미하고, 전토는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시는 삶의 안정으로, 물질의 수적 증가가 아니라 관계와 은혜의 충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1절에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삶을 살게 되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있었던 30절의 이야기를 육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삶이 영적인 것에만 주어짐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복주의는 잘못된 신앙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자에게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함을 주시기 원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 서두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마귀가 주는 온전히 순종하면 육신의 삶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앙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사람에게 이 세상에 더하심의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이 영과 육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간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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