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제목막 11:27-33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2026-03-03 10:46
작성자 Level 10

막 11:27-33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종교와 권력, 전통과 이해관계가 가장 치열하게 얽혀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성전이 있고, 그 성전을 중심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권위를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 그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을 할 권위를 주었느냐.”

이 질문은 전날 행하신 성전정화 사건을 두고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리려는 악한 목적의 질문입니다.

    

“권위가 어디서 왔느냐”를 묻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승인 없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고 자격 없음을 묻고자 질문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권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권위는 곧 통제력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권위를 가지느냐에 따라, 누가 결정권을 쥐느냐가 달라지고, 그 결정권은 곧 이익과 명예, 안전을 보장해 줍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보다, 예수님의 출처를 따집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일인지 분간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존재인지를 가려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지 대신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세례 요한은 이미 많은 백성들에게 선지자로 인정받았고, 그가 증언한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회개하라는 외침, 그리고 오실 메시아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만약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이미 분명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 의논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립니다.

“하늘로부터라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고 하면 백성이 두려워진다.” 이들의 기준은 철저히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보호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대답이 나에게 유리한가를 따집니다.

    

결국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이것은 무지의 고백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고백입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무지가 아니라, 사람 앞에서의 계산된 침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 진리에 관해 더 이상 알려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인간의 기준과 계산 속에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결정권을 누구에게 맡기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말씀 위에 있는지, 아니면 말씀이 내 기준 아래에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권위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눈앞에 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을 말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 신앙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면, 그 자리를 반드시 다른 것이 차지하게 됩니다.

인간은 중립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빠져나간 자리에 욕망이 들어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잃지 않으려는 욕망,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우리를 점점 더 비겁하게 만들고,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며,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권위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말씀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정직하게 서는 시간입니다. “주님, 제 판단보다 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 감정보다 주님의 뜻이 우선입니다.”

고백이 우리의 고백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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