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0:35-40 어리석음의 이유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잘못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잘못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게 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결국 부모의 채벌이 가해지게 될 때 아이들은 그제야 잘못을 고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돌이키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강한 훈계나, 채벌이 주어지게 될 때 ‘아! 이게 뭔가 잘못된 거구나!’라고 깨닫고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9장과 10장에서 계속해서 제자들의 존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육신적 욕망에 예수님을 따랐던 것들을 책망과 비유들을 통해 가르침을 주셨지만 진정한 깨달음이 없었던 제자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자 청년의 가르침 중에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이야기 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예수님께 인정받기 위해 자신들의 희생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희생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입지를 더 견고히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자신들의 희생을 이야기하고 제자들 중에 예수님께 자신들이 구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요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야보고와 요한은 예수님과 혈연 관계인 친척입니다.
사람은 여러 관계와 인연들이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입니다.
완전히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가운데 가장 강한 관계가 “혈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혈연인 두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자신들이 구하는 것을 이뤄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들의 요청은 37절을 보시면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이들이 말한 ‘주의 영광중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존재, 정치적 메시아, 혹은 왕이 되실 때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육신적 욕망을 이루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요청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은 정치적 메시아, 왕과 같은 영광의 높은 자리가 아니라 대속의 십자가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라고 두 사람에게 되물으셨습니다.
이 되물음에 두 사람은 39절에서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라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 대화는 대화의 주제도, 초점도 맞지 않은 동문서답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말씀하시는데 자신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39절 하반절과 40절에 진짜 정답을 주셨습니다.
39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죽음의 길에 결국 제자들도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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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좌우편의 앉음은 예수님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몫이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야고보는 첫 순교를 하게 되었고, 요한은 가장 늦게까지 남아 성경을 기록하고 노환으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둘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주어진 자리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당시에는 이일을 할 수 없었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깨닫게 하심으로 이 말씀대로 고통의 세례를 받고 사명을 감당하고 어린양의 보좌 앞에 앉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은 사람의 이해로 이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심이 주어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되지도, 행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 하나님께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가르침과 깨달음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가르침과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주시는 깨달음을 통해 제자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