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제목막 10:46-52 영과 육의 구원자2026-02-11 10:46
작성자 Level 10

막 10:46-52 영과 육의 구원자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에 어떤 소망을 가지십니까?

과거 기복주의가 우리나라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을 믿는 목적 대부분이 육신적 문제의 해결과 육신의 평강과 평안에 초점 되어 있었습니다.

    

육신적 은혜를 소망하는 것이 완전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에 초점 된 신앙은 영적인 것에 약함을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을 보시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알려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로마서 8장 7–8절에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의 제자로 부름받아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존재 가치의 이유인 것입니다. 마귀는 부름받은 우리로 하여금 이 부름받은 목적에 따라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삶의 초점을 육신에 맞추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복에 관해 영적인 것만을 의미하고 육적인 것은 아무 의미도 없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기록된 것처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알려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 확고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육신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합당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두 가지의 복을 받은 한 사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존재를 46절에서 ‘맹인 거지 바디매오’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 것입니까? 육적으로 최고로 좋지 않은 상황에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맹인만 되어도 육적으로 어려운 삶입니다.

하지만 맹인이어도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맹인이라는 사실이 불편은 하겠지만 그렇게 불행하고 고통스럽다고 이야기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반대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눈을 보이는데 가난하면 그 또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

    

그런데 바디매오는 맹인인데 가난합니다. 삶에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망 없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라는 사람의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가 자신의 앞을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디매오에게 소문을 들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순간이 일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할 정도로 예수님을 소리 질러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만나주시고 그의 멀은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일생에 가장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디매오의 은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문 52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라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는 영적인 은혜를 받았습니다.

    

누구와 상반된 것 같습니까?

마가복음 10장 17-22절에서 만난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을 찾았던 부자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제자가 될 기회를 주셨습니다. 진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자의 삶 보다 부자의 삶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바디매오는 눈을 보게 된 육적인 은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영적인 은혜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47, 48절에 기록된 바디매오의 고백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는 눈이 멀어 있을 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치병도 고치시며 말씀을 가르치시는 소문을 들을 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었던 것으로 말미암아 오늘 그는 영과 육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초점이 바로 세워지면 하나님은 영과 육의 은혜를 주십니다. 육신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영은 은혜는 입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초점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맞춰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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