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제목막 11:1-7 나귀 예언의 성취2026-02-11 10:46
작성자 Level 10

막 11:1-7 나귀 예언의 성취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의 사역 마지막을 시작하는 서막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기 직전의 장면은 매우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큰 기적도 없고, 군중의 환호도 아직은 없습니다. 장소는 감람산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라는 이름 없는 작은 동네입니다. 그러나 이 평범해 보이는 순간 속에 하나님 나라의 깊은 계획이 숨 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부르셔서 아주 구체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라.” 예수님의 말씀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아마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곧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마을을 아시고, 그 나귀를 아시고, 그 나귀가 왜 거기에 묶여 있는지도 알고 계십니다.

이 장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오래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스가랴 9장 9절에서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스라엘은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왕은 말을 타고 오는 정복자였습니다. 칼과 군사로 로마를 무너뜨릴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십니다. 전쟁의 말이 아니라, 평화의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예언을 ‘행하심’으로 이루십니다. 말씀은 말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유를 다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나섭니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가자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따로 구별해 두신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미 준비된 도구였습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풀 때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나귀 새끼를 푸느냐?”

아주 당연한 질문입니다.

남의 재산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질문까지도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제자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전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허락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예수님이 쓰시겠다고 하실 때,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필요로 하신다면, 주님이 말씀하신다면, 사람의 소유도, 상황도, 이해되지 않는 마음도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실 때, 이미 사람의 마음까지 준비시켜 두십니다.

    

나귀 새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저항하지도 않습니다. 묶여 있다가 풀려나 예수님께로 끌려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얹습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십니다. 이 장면은 화려하지 않지만, 하늘과 땅이 함께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오래된 약속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성취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기대와 방식과는 다를지라도,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성취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며칠 뒤, 같은 입술로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때, 그 방식까지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기대한 모습이 아닐 때 실망하고 돌아서지는 않는가.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조용히, 겸손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나귀 새끼 같은 존재를 찾으십니다. 크고 능력 있는 말이 아니라, 아직 쓰임 받지 않았을지라도 주님께 내어 드려질 수 있는 존재를 찾으십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준비됨이 아니라, 주님께 묶여 있다가 주님께 쓰임 받는 삶을 원하십니다.

    

새벽에 이 말씀 앞에 선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은 이것입니다. “주가 쓰시겠다”라는 이 한마디에 내 삶을 내어드릴 수 있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할 수 있는가?

구약의 예언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취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며, 여전히 사람을 통해 일하시며, 여전히 겸손한 방식으로 자기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그 예언 성취의 현장이 되기를, 주님께 쓰임 받는 나귀처럼 순종의 자리에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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