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제목눅 3:15-18 예수님 앞에 내려놓는 삶2026-09-10 18:55
작성자 Level 10


눅 3:15-18 예수님 앞에 내려놓는 삶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 위치, 경험, 소유 모든 부분에서 우리를 낮추지 못 하면 맡겨주신 사명을 하나님 뜻대로 감당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사람은 타락 이후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 앞에 세우는 것에 특기를 가진 존재로 변질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44절을 보시면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된 것을 로마서 1장 21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요한이 예수님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면서 자신을 그분 앞에 낮추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갖게 하신 것에는 이것을 감당하게 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400년 만에 선지자로 나타나 회개를 선포 했을 때 이스라엘 사회에는 큰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그를 존경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세례 요한이 그 영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을 존경하며 위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15절을 보면 백성들이 “혹 그리스도신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에게는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도 있었고, 따르는 많은 무리도 있었고, 영적인 권위도 있었습니다. 조금만 자신을 드러내면 사람들의 중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춥니다.
16절을 보시면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당시 신발끈을 풀어주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높일수록 요한은 자신을 낮추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볼수록 그들의 시선을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앞에 내려놓는 삶입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직분과 영향력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나를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고, 수고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섭섭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내가 드러나기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에 오히려 예수님을 높이고 나타내는데 온전하고자 했던 모습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 수 있었습니까?
자신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자신은 회개를 선포하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실제로 구원하고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17절은 예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심판의 주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래서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삶 전체를 한 문장으로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말씀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주인공의 자리를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알려지고, 내가 인정받는 것보다 예수님이 높임 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내가 점점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예수님이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높아지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기도가 세례 요한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내 수고를 몰라주어도 주님이 아시면 충분합니다.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진다면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자랑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고, 우리의 말과 행동과 섬김을 통하여 오직 예수님만 더욱 높아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는 주만 높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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