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3:19-20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중에 하나가 형통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소망한다고 하는 말씀을 써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이 형통의 삶을 사는 것도 하나님의 소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와 반대의 현상과 모습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이 그런 경우입니다. 40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 같은 사람으로 회개를 선포하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받도록 하는 하나님의 큰 사명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하는 사역을 온전히 자신을 내려놓고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난이 찾아왔다고 오늘 본문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 요한이 헤롯의 죄를 책망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고난을 받은 것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를 외쳤고, 군중과 세리와 군인에게도 죄에서 돌이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이야기를 가장 최고의 권력을 가진 헤롯 앞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절은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일과 모든 악한 일로 인해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헤롯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맡겨진 사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감옥이었습니다. 20절은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오히려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모든 일이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일부러 고난을 찾아가라는 뜻이기 보다, 말씀을 지키고 복음에 충성하다가 고난이 찾아온다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조금만 타협했다면 감옥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안함보다 사명 감당의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모든 고난이 복음을 위한 고난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고난을 당한다면 그 고난 앞에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보시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분명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세상에서는 왕궁에 있는 헤롯이 성공하고 감옥에 있는 요한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릅니다. 헤롯은 죄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요한은 감옥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신앙의 승리는 언제나 환경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승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죄가 없으셨지만 진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일함과 편안함보다 순종을 선택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십시오. 손해가 두려워 말씀을 타협하지 말고, 세례 요한처럼 맡겨 주신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필요하다면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임을 다시 생각하고 복음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 피하는 우리가 아니라 고난을 담대하게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 위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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