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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21-24 율법에 순종하심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할례를 받으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의 표징으로 처음 명령됩니다. 창세기 17장 7-14절에 할례에 관한 말씀을 처음 기록됩니다. 할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17장 7절에 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을 17장 10-11절에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라는 징표로 행하게 하신 것으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라고 애굽으로 보내는 중에 두 아들이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일로 죽음의 위험을 받게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약 백성을 이끌 지도자로 세워진 사람이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은 리더의 자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녀들을 할례를 행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와 비슷한 의미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셨지만 죄인 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으시고 죄 없으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언약 백성으로 인정받을 필요는 전혀 없으십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5장 18절에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고 말씀하신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왜 예수님께서 할례 받으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인유를 구원하러 메시아로 오시는 분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절의 팔일에 할례를 꼭 받으셔야 하는 것이 율법에 주신 규례 때문입니다. 창세기 17장 12절을 보면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앞서 모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할례를 받지 않으신다면 유대 전통과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메시아의 자격을 문제 삼게 되는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구원에 어떤 흠도, 어떤 반론도 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언약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온전하게 행하심으로 구원에 사람도, 사탄도 구원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시고자 함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구원을 위해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시게 하심으로 이루어진 구원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어떤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반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3-35절에서 이 구원의 완전함을 말씀하셨습니다.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것이 가능한 것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심과 구원에 결격적인 사항이 하나도 없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완전하신 나의 주 (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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