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5;8-11 은혜에 멈추지 않는 신앙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이후에 어떤 신앙의 모습을 보였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 살펴본 것처럼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부로서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다 사용했지만 결과는 빈 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물고기를 잡은 날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해도 얻지 못했던 것을 주님께서 한순간에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베드로가 육신적으로 주어진 그 은혜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예수님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적을 통해 단순히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구나”라고 생각한 것 이상의 두려움을 갖게 되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적인 능력 앞에서 연약한 인간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고 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사건은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 외에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베드로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동안 단 한 차례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마져도 곧바로 성령께서 떠나가셔서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라고 두려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승천하시기 전에는 성령께서 사람들과 함께 내주하시면서 깨닫게 하시는 일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의 임재하심부터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시게 되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로 고백 할 수 있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베드로가 오늘 고백하는 내용인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신적 권위 앞에 두려워 고배한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6장 5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고백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과 함께 본문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을 위한 제자로 예수님을 따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제자들은 3년 내내 자리다툼을 하고, 예수님의 복음의 제자로서의 삶을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 알고 깨달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제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과 이것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의 성공한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에 관해서입니다. 베드로는 놀라운 성공에서 더 놀라운 성공을 위해 지금 당장의 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마태복음 13장 44절에 기록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와 같은 원리입니다. 소작농을 하던 사람이 돈을 밭고 일을 하다 밭을 가는 중간에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합법적으로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사게 됩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재산도 별로 없어서 소작농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버리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작농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사고 거기 감추어져 있는 보화가 자신의 전제산보다 훨씬 값어치가 더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미친사람 취급을 받아도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물고기를 잡았지만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면 이런 물고기 정도가 아니라 더 엄청난 것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른 것이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높은 자리를 가지고 다툴 때 함께 다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찾아야 할 은혜가 있습니다. 육신의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면 육신의 좋은 것을 얻게 된다는 교훈이 아니라 비록 바르지 못한 동기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가 따르는 분이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제자라는 놀라운 은혜를 이루게 되는 결과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잘못된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지금 당장의 눈 앞에 있는 성공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은혜를 경험합니다. 기도가 응답되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며,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은혜의 목적이 단순히 내가 육신적으로 잘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내 문제가 해결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그 은혜를 통해 주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하고,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바르지 못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지만 깨달음이 없는 안타까움을 뒤로 하시고 그를 부르시는 목적을 알려주시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고기보다 더 큰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베드로의 관심은 고기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성공이었고, 그것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고기를 잡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존재성을 어부에서 제자로 전환 시키는 말씀입니다. 물고기 잡는 어부가 베드로의 존재성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사람을 낚는 존재로 바꾸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이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존재성을 바꾸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에 은혜의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은혜는 사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셨다면 그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움 가운데 나를 붙들어 주셨다면 이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의 손을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알게 하셨다면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절정은 많은 고기를 잡고 예수님을 따른 사건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10-11절에 있습니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의 부르심과 그 부름에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르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응답한 것도, 예수님을 따른 것도 아니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시작된 응답과 따름을 통해 예수님이라는 진리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이 은혜의 선물을 받았지만 선물보다 선물을 주신 주님이 더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어린 신앙은 “주님, 무엇을 주시겠습니까?”를 묻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찾을 때는 문제 때문에 나올 수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자녀 때문에, 물질 때문에, 어려움 때문에 주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도 받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평생 복만 구하는 사람으로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받은 은혜가 사명이 되고, 사명이 순종이 되고, 순종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이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복만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구하게 하옵소서. 받은 은혜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은혜로 사람을 살리게 하옵소서. 주님이 부르실 때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기쁨으로 따르게 하옵소서.” 은혜의 목적은 내가 더 많이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더 온전히 따르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받은 은혜를 사명으로 바꾸고, 그 사명을 따라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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