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15-19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오늘 말씀은 ‘성전 정화 또는 성경 청결’이라는 별칭을 가진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에 마지막 한 주간의 첫 시작으로 행하셨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을 가지고 해석하는 일반적인 것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해석입니다.
강도의 소굴이라는 의미로 인해 일반적으로 제사장들이 부당 이익을 취한 것과 성전세를 가지고 부당 이익을 취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더 나아가 거룩하고 청결해야 할 성전을 가축들로 더럽힌 것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경우가 일반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씀을 표면작으로만 이해한 것입니다.
성전정화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56장 6-7절에 기록된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는 말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작 정화하려고 하셨던 것은 장사치들과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라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예배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에서 이방인이 예배하지 못하도록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악행이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은 솔로몬의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에는 없었던 장소입니다.
헤롯 대왕이 이스라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성전을 확장하면서 형성된 곳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을 이사야 56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예배 할 수 있도록 헤롯을 통해 마련해 놓은 기도의 장소에서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장사를 한 것입니다.
이들의 장사로 인해 이방인들이 기도할 장소가, 예배할 장소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말씀하시면서 이방인이 기도할 수 있는 곳을 없애버린 이스라엘의 행위를 올바르게 바로 잡으려고 환전상의 상을 엎으신 것이고, 가축들을 내어쫓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화하시려고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된 상거래와, 부도덕한 이익을 취하려고 했단 제사당의 무리를 책망하시고 바로 잡으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장소를 없애버린 그 악함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 가운데 택한 자녀들이 있고 그들이 예배 할 수 있도록 허락된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처럼 귀하고 값진 것은 없으신 분이시기에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기도의 장소를 회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은 없는지 묵상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교적인 것에만 얽매여 있거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육신적인 것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대로 온전한 신앙의 삶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 여인에게 장소가 아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라고 알려주신 온전한 신앙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 혹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는지 묵상하고 있다면 회개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우리 신앙의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