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21 눅 4;31-37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에서 말씀을 전하신 후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능럭을 햄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동일한 사역을 하셨지만 나사렛과 가버나움에서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은 대조적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신 고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었고 가족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익숙함이 오히려 믿음을 방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고 그 말씀이 자신을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시자 처음에는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곧 4장 22절에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전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예수님을 낭떠러지에서 밀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보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시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31절은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라고 말씀합니다. 나사렛에서도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고 가버나움에서도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동일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32절은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권위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주로 선배 랍비들의 해석과 전통을 인용하여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권위를 빌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29절도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위는 가르침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에 실제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회당 안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보자 크게 소리쳤습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여기에 놀라운 대조가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예수님을 안다고 해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은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분을 나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았지만 예수님께 순종하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권세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그 사람을 무리 가운데 넘어뜨리고 즉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 한마디 말씀하시자 악한 영이 복종한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권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정도의 말씀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8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사탄에게 매여 있던 사람이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바로 앞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아의 사역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4장 18절에서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읽으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나사렛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에서는 그 말씀이 실제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말로 “내가 메시아다”라고 주장하신 것이 아니라, 메시아에게 약속된 구원의 역사를 실제로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 서로 말합니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보면서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7절은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고 말씀합니다.나사렛과 가버나움의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익숙함 때문에 믿지 못했습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권위에 놀랐으며, 그 말씀의 능력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사렛에서는 예수님을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했고, 가버나움에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이 그분이 누구신지를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고, 수많은 설교를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사렛 사람들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요셉의 아들 예수”였습니다.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에 관한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메시아, 나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동일하신 메시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으며 그분에게는 죄와 사망과 어둠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며 놀라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능력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온전히 인정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