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4;25-30 택한 자들의 구원자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오늘 말씀은 어제 살펴본 24절과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왜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셨습니까? 핵심은 불신입니다.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자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인간적으로만 알았습니다. 요셉의 아들은 알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놀랐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24절의 핵심은 단순히 “고향 사람에게 인정받기 어렵다”는 속담이 아닙니다. 구원자가 자기들 가운데 오셨는데도 믿지 않는 불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갑자기 엘리야 시대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이스라엘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어려움을 당한 과부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과부에게 보내지 않으시고 이방 땅 시돈의 사렙다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5절을 보면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도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수리아 사람 나아만입니다. 나아만도 이방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결국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갔을 때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대조가 아주 분명합니다.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은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잘 안다고, 가까운 사이라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이 은혜를 받은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훌륭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28절에 “다 크게 화가 나서”라고 했습니다.왜 화가 났습니까?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을 말씀하시면서 구원은 인간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은혜라는 사실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29절을 보면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끌고 가서 낭떠러지에서 밀어 죽이려고 합니다.여러분, 이것이 불신의 무서움입니다.처음에는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불신이 결국 예수님을 거부하게 만들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30절은 말씀합니다.“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죽일 수 없었습니다. 아직 십자가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신과 거부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계속해서 십자가를 향하여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나는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을 많이 알고 설교를 많이 들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사렛 사람들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다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에베소서 2장 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내가 남보다 지혜로워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남보다 선해서 선택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은 감사입니다.“하나님, 왜 나 같은 죄인을 불러 주셨습니까? 왜 나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까?”이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나사렛 사람들처럼 말씀을 가까이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더욱 굳게 믿게 하옵소서. 아무 자격 없는 나를 불러 주신 택하심의 은혜를 평생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예수님은 택한 자들의 구원자이십니다.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의 고백은 오직 감사로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주신 사명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오늘 하루 택함 받은 자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맡겨주신 하루를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