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제목막 9:42-50 존재성을 이해하라2026-01-14 17:10
작성자 Level 10



막 9:42-50 존재성을 이해하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사람은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성공의 자리, 어떤 이는 안정된 노후, 어떤 이는 인정받는 인생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에 반드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장소를 보여 주십니다.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

그곳은 예수님이 직접, 반복해서, 강하게 말씀하신 ‘지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매우 강렬하고 충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손을 찍어 버리라, 발을 찍어 버리라, 눈을 빼어 버리라 등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전에 살펴보았던 말씀 중에 제자들의 높고 낮음에 관한 다툼과 자신들이 행하지 못했던 귀신을 내쫒지 못한 것에 반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사람들을 금한 것에 대한 말씀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논쟁의 핵심은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 누가 인정받느냐’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세워 놓으십니다.

그리고 교훈하신 것이 36-37절 말씀으로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고 교훈을 주셨습니다.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영접할 수 있는 낮아짐이 필요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아이들을 가지고 영적 깨달음이 없는 제자들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게 낫다.”라고 경고하십니다.

높아짐을 놓고 싸우고, 자신들의 위치가 위협받을까 이기심을 발동했던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작은 자’라는 인간 취급받지 못하는 존재를 존귀하게 대하고, 그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심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함 때문에 교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육신의 욕망의 두려움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비유로 들어주신 것이 “연자 맷돌”입니다.

연자맷돌은 두 사람이 겨우 돌릴 만큼 무거운 돌입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가장 무거운 이미지를 선택하십니다.

왜입니까? 죄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절대로 가볍게 다루지 않으십니다.

특히 제자로서 잘못된 타락의 본성에 대해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려라, 발이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려라,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려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육체를 훼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싸워야 할 각오를 지옥에 가지 않아야 할 중요성과 두려움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지옥은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옥을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꺼지지 않는 불,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 이 말씀은 은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존재에 합당하지 못한 삶의 모습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지옥에 가지 말아야 할 두려움을 제시하시고 본문 49절“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49절과 50절은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른 난해구절입니다.

    

그러나 9장 전체의 본문의 흐름과 주제를 가지고 정리한다면 49절에서 말씀하시는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지옥 심판의 두려움’을 의미한다고 해야 합니다.

소금 치듯이라는 말은 소금에 절인다는 말입니다. 불로 소금에 절이듯이 불로 사람을 절이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타락의 본성에 젖어 있는 삶의 두려움을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50절에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49절을 본문의 흐름과 주제에 맞춰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50절 해석이 뜬금 없는 구절이 됩니다.

하지만 49절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으로 해석하면 50절은 앞문장과 연계 되어 제자들에게 욕망의 다툼에서 돌이켜 회개하라는 구절로 온전한 해석을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름받은 존재의 깨달음을 가지 못해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목적과 인생의 목적이 육신의 타락의 본성에 따른 삶의 모습을 가졌기에 그들이 모습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누가 높으냐의 다툼이 아니라 제자로서 사명을 생각하고 사명을 위한 동역자가 되어야 할 것을 알려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로 부름 받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도 성령을 받기 전의 제자들처럼 바르지 못한 욕망의 존재 밖에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과 맞아 바른 선택을 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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