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25 하나님의 기대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을 가지고 사람들이 이해하는 일반적인 해석은 대가성의 해석입니다.
하나님께 용서 받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게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개념으로 해석합니다.
본문을 문자 그대로 보고 이해한다면 그렇게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죄사함에 관해 알려주신 것과 본문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 본문을 대가성의 의미로 용서를 하는 자가 용서 받을 수 있고, 용서 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다는 해석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나는 죄를 사함 받음에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대가성이 아닌 은혜이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시면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도, 우리의 죄를 용서 받고 구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치러진 구원의 은혜를 거저,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신 분이 ‘용서를 받으려면 용서해야 한다.’라는 배치되는 가르침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이 한 절을, 단독으로 해석 하면 문자 그대로 해석 하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문은 기도의 가르침에 함께 붙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연한 권면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제자의 존재성을 예수님을 믿기에 순종하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이 놓인 자리를 먼저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믿음과 기도에 대해 강하게 말씀하신 직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가운데 예수님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받을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기도를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사람과의 관계, 그것도 용서의 문제를 꺼내 드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믿음과 기도는 결코 관계 문제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문제를 훨씬 더 분명하게 다루십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뒤, 다른 기도 내용은 설명하지 않으시고 오직 용서에 대해서만 다시 강조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래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에게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삶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는 베드로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답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 비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엄청난 용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작은 빚을 붙들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용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무섭도록 분명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가르침은 마가복음 11장 25절과 정확히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용서를 신앙의 선택 사항으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용서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의 표지입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니라.”
그리고 누가복음 17장에서는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하거든 너는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반응한 것은, 용서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용서를 믿음의 결과로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믿음이 크면 기적이 일어나고, 믿음이 깊으면 능력이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 믿음의 진짜는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고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제자의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ㅇ려주시자 함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1장에서 산을 옮기는 믿음을 말씀하신 직후, 용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에서 기도에 관해 말씀하시는 믿음이 자신이 갖고 있는 열정과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결론적으로 가르쳐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모든 복음서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마가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느냐보다, 기도를 통해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기도자를 원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녀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하지 못하고 깨어진 채로 드려지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제자라면 용서를 받은 사람으로 마땅히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소망하심으로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어제 살펴본 22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라 죽은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말씀하심이 예수님의 존재성을 알려주시기 위함이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고 그리스도로 믿고 기도한다면 불가능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그분의 존재성으로 설명하기 위함인 것처럼 오늘 본문도 그분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분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는 존재성을 이해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용서함을 대가성으로 알려주시고 죄사함을 받는 것을 대가성으로 가르치심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마가복음 11장 25절을 통해 기대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하늘에 닿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임했다는 증거입니다. 이 새벽,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받은 용서를 흘려보내는 자로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