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제목눅 4;9-12 예수님의 시험 3 “사명 회피”2026-09-14 11:14
작성자 Level 10

 

눅 4;9-12 예수님의 시험 3 “사명 회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 대한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의 시험의 내용은 9절을 보시면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이 시험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어떤 존재로 오셨는지를 흔들기 위한 공격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신적 존재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시기 위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대속물의 존재로 오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도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존재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신으로 이 세상에서 존재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에는 더욱 교묘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존재성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구원 받아 신적 존재의 아들로 인정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마귀의 공격은 시편 91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91편 11-12절을 보시면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명하여 너를 지키실 것이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니 뛰어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셔서 보호받고 신적 존재로 인정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정말 너를 사랑하신다면 너를 보호하시지 않겠느냐?”라는 시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 받아 이 세상에 온 존재인 대속의 죽음을 죽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귀의 목적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신적존재로 이 세상에 군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신적 능력을 자신의 편안함과 안전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신성을 인정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대속의 죽음을 죽으러 오신 것이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이 세상에서 인정받으라고 하는 것에 요동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자신의 대속의 죽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마귀를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길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천사의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는 길이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는 “하나님이 너를 지키시는지 확인해 보라”고 마귀가 유혹했지만,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실제로 “엘리 엘리 사마사박다니”라고 외치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나님의 버리심을 직접 겪으심으로 이 세상에 신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닌 대속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고난의 영광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는 보호받음을 증명하라는 시험을 거절하셨고, 십자가에서는 버림받음의 고통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이 구원이 아닌 우리의 구원을 위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대속의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귀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느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왜 일이 잘 풀리지 않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더 편안하고 성공하고 부요하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

 

이러한 공격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이라는 질문 아래 이 세상의 것들을 소유하는 것,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이 세상에서 부요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을 갈망하고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한 받은 자녀의 삶이라는 공격인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환경을 근거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의 것을 규정하고 그것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여기며 육신의 것들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편안함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는 아닙니다. 성공과 부요함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온전히 받으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가장 고난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편안한 길만을 찾기보다 사명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성공하는 길보다 제자의 길을 선택하고, 나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는 순종 때문에 손해를 보고, 사명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육신의 복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고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고, 그것을 위해 인생을 살라고 하며,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

오늘 하루 진정한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시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이겨 순종의 삶, 제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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